재즈

[미니 재즈 매뉴얼] 4. 빌 에반스 Bill Evans, Autumn Leaves 과 에릭 클랩톤 Eric Clapton / 키스 재럿 Keith Jarrett 비교하기

suhyuk 2020. 9. 30. 16:13

youtu.be/r-Z8KuwI7Gc

전설적인 스탠다드 넘버. Autumn Leaves 다. 스탠다드 넘버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유명하고 개성있는 수많은 천재 아티스트들이 각자 자신만의 느낌으로 각색한 버전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래된 스탠다드 넘버의 경우에는 수많은 재즈 역사의 수많은 갈래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한 결과들이 있는데, 재즈의 사조 순으로 살펴보는 맛이 있다. 그 당시를 빛냈던 아티스트들의 연주인 만큼, 그 시대를 풍자할 정도의 무게가 있는 연주라는 말이 되니까.

처음으로 들을 Autumn Leaves 는 바로 위에 있는 빌 에반스의 버전이다. 어떻게 보면, 이 빌 에반스의 Autumn Leaves 이야말로 수많은 버전들 중에서도 스탠다드라는 생각이 든다. 연주를 할 때, 원곡의 구성이 중요도에서 개성보다 먼저고, 빌 에반스의 개성은 연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노래가 빌 에반스라는 물을 살짝 머금은 느낌이다. 다른 연주자들의 버전들은 개성이 많이 드러나 노래의 원래 멜로디를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빌 에반스의 경우에는 멜로디와 조 진행을 모두 살리면서도 아주 심플하게 자신의 개성을 발산한다. 빌 에반스의 스타일 자체가 이런 덤덤하고 겸손한 개성이 아닐까 싶다. 

 

더 세세하게 뜯어보자면, 빌 에반스의 특징은 이렇다. 먼저 화음을 너무나도 잘 쓴다. 한 번에 세네개의 음들을 누르는데, 음들이 클래식에서 듣던 지루한 피아노에서의 음 조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굉장히 심플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절제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누르는 음들 사이에 짤막짤막한 간격이 있다. 듣다보면 음이 막 유려하게 연결되는 게 아니라, 연속하는 음들이 따로따로 노는데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이런 연주 방식이 듣는 이로 하여금 굉장히 정적이고 심플한 느낌을 받도록 하고, 이게 빌 에반스 특유의 스타일을 만든다.

 

*다음은 이 이상 뜯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부분이다. 음악적인 지식을 소개하고 있으며, 음악을 잘 모르더라도 무리없이 들을 수는 있으나 이 부분이 너무 어렵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다음 볼드체까지 뛰어넘으시면 된다.

 

빌 에반스의 특징을 더 세세하게 뜯어보자. 추상적인 것은 객관화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느낌과 감상은 분석하는 순간 그 멋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상의 방향을 다채롭게 만든다. 여러가지 감상법을 알게 되는 순간,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이다. 빛은 창문이 많을수록 많이 새어들어온다.

 

그러기에는 먼저, 간단히 알아두어야 하는 지식이 있다. 보이싱(voicing)과 보이스 리딩(voice leading)이라는 개념이다. 나도 피아노를 배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상을 위해 알아본 정보들이라 소개하는 개념들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이해한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개념을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유튜브나 구글의 수많은 정보들을 확인해보면 된다. 아무튼, 보이싱과 보이스 리딩. 이 둘은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보이싱은 한 번에 여러 음을 누르는 것, 즉 악보상으로는 수직으로 음을 배열하는 것이고, 보이스 리딩은 이 보이싱에서 그 다음 보이싱으로의 진행을 의미한다. 보이싱은 말하자면 화음의 방식이고, 보이스 리딩은 화음들의 멜로디 진행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추가로, 보이싱이라면 '한 번에 많은 음을 누르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 때 눌러야 하는 음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인 베이스 음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음들을 한 옥타브에 몰아넣으면 close voicing, 한 옥타브보다 넓은 범위에 뿌려놓으면 spread voicing이라고 한다. 음을 한 옥타브에 몰아넣었다는 것은,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범위라는 뜻이다. 즉 close voicing은 여러 음들을 한 손으로 다 누르는 방식의 보이싱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정도까지만 이해해두면 다음의 설명들을 통해 빌 에반스의 스타일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빌 에반스의 가장 큰 특징은 뿌리음, 근음을 연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rootless voicing 이라고도 불린다. 화음 중에 뿌리음이 없다는 이야기. 가장 잘 아는 C장조의 3화음 도/미/솔을 예로 들어보자. 이 도/미/솔 에서 '도' 가 뿌리음, 즉 근음이 된다. 이 3화음을 '전위'시킨다고 해서, 미/솔/도 순서로 음을 누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뿌리음은 '도'가 된다. 다른 개념에서 등장하는 '베이스 음'과의 차이라면, 베이스 음은 도/미/솔 에서는 '도'지만, 미/솔/도 에서는 '미'가 된다는 점. 즉 가장 낮은 음을 베이스 음이라고 하고, 코드의 뿌리가 되는 음을 뿌리음, 근음이라고 한다. 추가로 으뜸음은 곡 전체의 으뜸음을 의미하니 비슷하지만 또 다른 개념이 된다. 아무튼,

이 뿌리음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 빌 에반스의 큰 특징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도/미/솔 화음을 연주할 때 미/솔 만 연주한다는 말이다. 뿌리음을 연주하지 않으면 어떤 장점이 있느냐,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재즈에서 베이스가 뿌리음을 위주로 연주하기 때문에 베이스가 연주하는 뿌리음과 피아노가 연주하는 뿌리음이 충돌하여 한 음이 두 번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빌 에반스가 '내가 근음을 연주하면, 베이스는 대체 왜 있냐'고 하기도 했단다.

두 번째 효과는, 원래 눌러야 할 뿌리음을 누르지 않게 되었으니 손가락 하나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를 수 있는 음이 하나 더 늘어난다. 기본적인 보이싱에서 더 확장된 보이싱을 가능하게 한다. 화음이 더 다양해진다는 말이다.

 

두 번째 특징은 'four-way close voicng' 과 'drop two' 방식이다. 모던 재즈 피아노 연주에서 많이 나오는 방법으로, 솔로를 할 때 특히 유용한데, 위에서 배웠던 개념을 이용해 간단히 말하자면 close voicing은 여러 화음들을 한 옥타브 안으로 몰아넣어 한 손으로 다 누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했고, 추가로 four-way는 그 음의 개수가 4개인 경우다. 즉 한 옥타브 안에서 - 다른 말로는 한 손으로 - 4개의 음을 동시에 누르는 방법이 되겠다. 여기에 drop two는 뭐냐, 원래 오른손이 한 번에 네 음을 누르고, 왼 손이 베이스 음을 누르게 되는데, 왼 손이 베이스 음을 누르는 대신에 오른손으로 누르는 1,2,3,4번 음 중에 3번 음을 한 옥타브 내려서 친다는 것이다. 이건 유튜브에서 강의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말로 듣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데,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음이 조금 더 심플해지고- 동시에 풍부해진다. four-way voicing을 drop two 방식 없이 사용하면 어떻게 되나, 아까 말한 '뿌리음을 연주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게, 왼손과 오른손에서 겹치는 음이 발생하게 된다. 이 drop two 방식을 사용하면 같은 음의 반복을 줄일 수 있게 된다. rootless voicing과 겹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특징은 voice leading, 보이스 리딩이다. 뿌리음 없는 보이싱, 즉 rootless voicing을 하게 되면 음 자체가 단순해지고, 그런 보이싱들의 진행인 보이스 리딩도 많이 부드럽고 단순해진다. 보이싱 자체도 풍부했다. 그리고 빌 에반스는 보이싱 뿐만 아니라 보이스 리딩에서도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 음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데, 들어보면 뿌리음이 없는 화음 4개가 연주되고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고 절제된 느낌을 준다. 음 사이에 짧은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 것도 그럼 절제된 느낌을 만드는 데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독립된 음들을 아르페지오 기법처럼 연결되게 연주하는 오스카 피터슨과 정반대로, 여러개의 음들을 끊어서 연주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절제된 빌 에반스의 분위기는 빌 에반스의 곡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더 우울해보이도록 부채질했을 것이다. 빌 에반스의 In a Sentimental Mood를 들어보면 이 절제된 우울함이 최고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외에도 여러가지 기법들을 사용한다. 특히 빌 에반스의 오른손에 해당하는 연주 기법들은 연주를 하고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개념들이라서 살짝 포기했다. 이 참에 재즈 감상을 위한 피아노 공부를 시작해볼까 하는데, 피아노 공부를 하면서 뭔가 더 이해되는 게 있다면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아직은 이 정도밖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쓰면서 보니까 빌 에반스의 연주 기법만을 다룬 논문도 있던데, 물론 그만큼 깊이 들어가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일단 항복이다.

 

아무튼 빌 에반스의 연주 기법과 그 연주 기법들이 만드는 분위기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는데, 사실 이야기를 정리해서 하자면, 빌 에반스를 들을 때 한 번에 누르는 음들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집중하고, 그 음들(보이싱)과 그 다음 음들 사이의 간격과 관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빌 에반스의 특징을 체험할 수 있다.

빌 에반스는 최소한의 음들만 연주하는 방법과, 특히 그 음들을 '모던한 조합'들로 골라 클래식에서만 사용되던 새로운 기법들로 보이싱을 극대화했고, 동시에 절제된 서정성으로 독특한 감성과 함게 풍부한 연주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빌 에반스는 당시에는 부가적인 악기로 받아들여지던 피아노의 연주를 여러가지 기법으로 극대화시켰는데, 그 기법들은 낭만주의 시대의 클래식 연주에서 차용해온 것들이 많았다. 이 기법들은 이전까지는 똑같이 들리던 피아노 연주의 한계를 넘어, 피아노 연주에 다양성과 새로움을 주었고, 이 기법은 모던 재즈 피아노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추가로 아주 커다란 특징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빌 에반스의 '내적 접근을 위한 즉흥연주'가 있다. 빌 에반스의 이런 접근에 마일스 데이비즈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이 내적 접근을 위한 즉흥연주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inner voice movement 기법도 빌 에반스의 큰 특징 중에 하나였다. 이 기법은 보이싱 과정에서 하나의 음을 반음 차이로 옮겨가며 연주하는 것. 더 이상 덧붙이지 않겠다. 서정성이 짙은 특징이다, 이 정도다.

 

 

youtu.be/ZEMCeymW1Ow

첫 번째 버전은 냇 킹 콜, Nat "King" Cole 의 Autumn Leaves. 재즈에서 가장 오래된 아티스트들 중 한명이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본명은 익숙하지 않고, 원래 이름은 너새니얼 애덤스 콜스(Nathaniel Adams Coles)라고 한다. 1919년생으로, 30년동안 재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재즈팝으로 재즈 뿐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L-O-V-E를 비롯해 수많은 명곡들을 불렀다. 

Autumn Leaves 등의 대표적인 스탠다드 넘버 재즈들은, 보컬이 있는 버전이 있고 보컬이 없는 버전이 있다. 보컬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보컬이 중심이다. 어떤 창법에, 어떤 분위기에, 어떤 자신만의 느낌을 넣어 부르는지. 이따금 마디의 길이를 균등하지 않게 늘려버리거나, 박자를 조금 엉키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노래 자체에 개성이 드러난다는게 포인트다. 그럼 보컬이 없는 버전은 어떠냐, 보컬이 없는 경우에는 먼저 멜로디에 집중해야 하고, 두 번째는 솔로다. 스탠다드 넘버를 비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멜로디 때문인데, 연주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나 방법으로 멜로디를 연주하고, 같은 피아노라 하더라도 템포가 차이가 나거나, 분위기에 차이가 분명히 난다.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해야 하니까. 멜로디를 비교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 다음은, 같은 조 진행에서 둘의 솔로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같은 멜로디를 다른 분위기로 풀어내는 것 이상으로 솔로에서는 아주 지대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솔로의 방식 자체에 차이가 있고, 이는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Autumn Leaves의 서로 다른 피아노 연주 둘을 비교하는 것이 훨 낫다.

 

위의 Bill Evans 와 비교할 연주는 두 개다. 하나는 캐넌볼 애덜리, 하나는 내가 애정하는 키스 재럿이다.

 

youtu.be/u37RF5xKNq8

캐넌볼 에덜리 - Autumn Leaves

www.youtube.com/watch?v=r8sGze47z_w

키스 재럿 - Autumn Leaves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 중에 하나는,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의 비중이다. 빌 에반스는 베이스에 많은 의존을 했다. 위에서 언급한, 근음을 연주하지 않는 기법 자체가 '베이스가 뿌리음을 연주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있기도 하고, 빌 에반스는 솔로 구간에서도 다른 악기 구성들을 중요시했다. 특히 베이스 연주자인 스캇 라파로와의 트리오 당시에는 솔로 자체를 솔로잉과 컴핑, 즉 솔로와 반주자의 경계를 약하게 하고 인터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연주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을 정도. 키스 재럿의 경우에는 클래식한 느낌의 피아노와 피아노 단독 솔로 구간이 빛을 발하는 데에 비해, 빌 에반스는 단순히 소리 크기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베이스와 드럼의 비중이 커서 이 둘에게 많은 공간을 내어주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들어볼 빌 에반스의 다른 노래는 빌 에반스와 스캇 라파로의 마지막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에 수록된 Alice in Wonderland 다. 베이스 연주자 스캇 라파로는 이 앨범을 연주하고 10일 뒤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빌 에반스는 충격에 녹음을 쉬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Jim Hall과의 듀오 연주인 Undercurrent 가 다음 녹음이었으니 1년이 넘도록 녹음을 쉬었던 것이다.

youtu.be/1ruDi0rOduk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노래인데,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최대한 좋은 음질로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패닝현상이 잘 되어있어 베이스와 피아노가 완벽하게 분리되고, 베이스와 드럼은 왼쪽에서, 피아노는 오른쪽에서 연주한다. 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둘의 볼륨과 비중은 비슷해야만 한다. 어느 한쪽이 솔로를 하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컴핑의 비중도 꽤 크게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스캇 라파로의 연주 자체가 너무나도 좋다. 어디에서나 듣던 일반적인 베이스 연주가 아니다. 들어보면서 그 느낌을 잘 찾기를 바란다. 뉴욕의 유명한 재즈바 Village Vanguard에서 녹음된 실황 앨범이다 보니 유리잔 소리나 말소리도 오히려 분위기에 한 몫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