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효과주의적 비평 논강』, (1931)
자를 것이 없는 글이라 중략 없이 담았습니다.
예술이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과, 예술이 그 영향받은 개개인들을 통해 사회변화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런 영향을 측량 혹은 예측하는 자로서의 비평가의 역할.
글이 길고 조밀해 읽기가 어렵지만 굳이 정돈하지는 않았고 중요한 문단만 통째로 이탤릭체 처리했습니다.
찬찬히 읽고 싶으신 분은 다른 매체로 옮겨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효과주의적 비평 논강』
예술을 평가함에 그것이 사회변화에 (특히 우리 생활의 가장 직접적 결정적인 정치의 변혁에) 공헌하는 력의 방향과 강약에 준거하여 하려 하는 현대의 사회적 비평의 가능에 대한 단일 논고이다.
사회적 사실 … 그러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을 기술해 보자. 한 개의 예술 작품이 작성되면 작자의 손을 떠난다. (편의상 예를 문학적 작품에 든다) 수만의 신문이나 수천의 잡지에 인쇄되어 수만 혹은 수천의 우리들 독자에게 읽혀진다. 그러면 우리는 그 작품의 사회적 효과를 고찰해 볼 수 있지 아니한가.
우리들의 현재의 심리적 (혹은 생리적) 상태 A는 경험 B로 말미암아 A+B=A의 변화를 일으킨다 (실로 우리의 생이란 이런 변화의 연속이다.) 이 경험 B의 대체가 예술일 경우에는 경험 B의 내용은 우리의 상상을 자유로이 비상시키고 감각에 유열의 정을 일으키는 소위 미적 경험이지마는 이와 다른 논문에 의한 지식 생활 상의 실 경험 등도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 작품을 읽은 독자는 거기서 어떠한 인상을 받아 얼마큼 심정에 변화를 일으켜서 그는 그 달라진 심정을 가지고 달라진 태도로써 모든 사회적생활에 첨가하여 전 사회가 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회의 전 상태 Y는 그 작품의 영향 X로 말미암아 Y+X=Y’ 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은 은밀한 가운데 우리 생활의 모든 방향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판별력으로 그것을 측정할 수 있고 없는 문제는 있으나 한 개의 예술적 작품의 효과는 간접, 다시 간접으로 우리의 생활에 작용하여 우리의 정치, 경제, 상상,과학, 종교가 다 그 영향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실로 그것은 사회의 조수에 던져진 한 개의 돌멩이다. 우리가 어떤 인물의 정치적 행동을 논평할 때는 암묵리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
효과의 실증적 측정 . . . 이제 가장 구체적인 예를 들어 조선의 어떤 신문에 발표된 한 단편소설이 있어 오천의 독자에게 읽혀졌다 하자. 우리는 그 오천 인에게 기서를 구하여 그 작품에서 받은 인상,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심정에 일어난 변화, 즉 그의 미적 경험을 기술시킬 수 있고 따라 그의 행동에 일어난 변화를 보고받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보고를 종합하여 고찰하면 우리는 그 작품의 미적 영향력 또 정치, 경제, 기타에 끼친 영향, 따라 사회에 끼친 총 효과 X를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최근 노서아에서 노동조합 같은 단체에서 그 성원 다수에게 동일한 작품을 읽히고 그 비평을 구하여 이것을 종합하여 그 작품의 평가를 얻으려는 집단적 비평의 경향 가운데 실행되고 있다.
비평가의 직능… 그러나 한 개의 작품이 개인의 심리에 나아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과연 측정하기 쉬울 만큼 두드러진 것이냐, 아니다. 이 영향은 지극히 상세한 것이어서 비상한 천재의 진맥이 아니고는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순 이론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한 마디 소리를 쳐서 공기에 파동을 일으키면 그 파동은 무한히 전파하여 그 영향으로 전 우주가 약간의 변화를 입는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나 실제로 그 변화를 측정할 수는 없는 것이과 같이 한 개의 문예작품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면 아니다. 보통의 독자는 자기의 받은 인상을 분석하여 언어로 발표할 수도 없는 미소한 영향을 더구나 사후의 실증적 측정이 아니라 예측할 책임을 문예비평가는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가는 특별히 예리한 감수력을 가지고 자기의 받은 인상을 분석하므로 일반 독자의 받을 인상을 추측하여 이 작품이 사회에 끼칠 효과의 민감한 계량기, 효과의 예보인 청우계가 되어야 한다.
재래의 비평론… 비평사를 들추어보면 근대 이전의 고전주의비평은 약간의 믿음받는 고전을 표준 삼아 몇 개의 법칙을 추출해서 그것으로 예술 비평의 척도를 삼는다. 가령 어떤 희곡을 보고는 자기가 받은 인상의 여하를 반성하지 않고 삼일치의 법칙에 맞고 아니 맞는 것을 물어 그 작품을 비평하려 한다. 이러한 기계주의적 비평이 우리에게 흥미 적은 것은 물론이나 그 이후의 인상주의비평,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애호자를 가지고 있다. 성심을 가지지 않고 비교적 소박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해서 인상을 받아들이고 그 인상을 매력있는 필치로 기술하려 한다. 작품의 가치판단보다 해석에 가까워 우리 감상의 지도가 되며 그 작품을 기록삼아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예술적 작품을 스스로 지어낸다. (인상주의가 개인의 미적 경험을 기술하는 데 그치고 사회적 영향을 따로 고찰하지 아니하는 데는 미적 경험 그것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상이 내재되어 있다) 최근에 문예비평의 신 방면을 개척한 것이 맑스의 유물사관을 예술학에 이용한 예술의 사회학이다. 그 전의 문학이론이 많이는 개인의 천재 재능에 치중하고 예술을 다른 사물에서 독립시켰음에 반하여 예술도 다른 정신현상과 동일히 사회의 경제적 기초 위에 핀 꽃이라 하여 예술의 발생을 그 사회의 물질적 생활과 경제 조직에서 연역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맑스주의가 우리 심리에 따라 예술의 사회적 기초를 설명하려 하는 데는 적지않은 성공을 얻었으나 그 반면에 예술의 생리학이라고 부를 만한 예술의 특성 - 왜 많은 사회현상 가운데 예술현상이 분화되어 오는가 왜 한 계급의 예술적 표현이 특히 갑이라는 예술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왜 예술가 을은 예술가 병보다 더 강한 표현력을 가졌는가 - 에 대한 고구가 아직까지 부족하여 예술 발생학으로서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작품의 평가에 있어서도 그의 정치적 경향만을 결정하기에 급하여 그 영향을 일으키게 하는 예술 독특의 경로를 이해치 못하는 혐이 있다.
예술의 특성 . . . 예술이 다른 사회현상과 다름없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이미 말했거니와 가령 생산기계의 발명은 사회의 생산력에 변화를 일으켜 경제조직, 정치제도에까지 영향이 미치거니와 예술은 어떠한 경로를 밟아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가, 우리는 이 경로를 이해함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을 논할 때에는 예술의 특성,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된다.
요새 보통 부르주아문학론이라고 불려지는 문학론을 보면 문학은 쾌감을 일으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상인이 돈을 얼음같은 발명가가 발명을 완성함 같은, 군인이 전승함 같은 쾌감이 아니라 직접 실생활의 의해관계를 떠난 쾌감(Uninterested interest) 실행에 의한 쾌감 아닌 관조에 의한 쾌감을 말한다. 여배우가 무대 상에서 보여주는 모든 연애기교는 예술에 속하려니와 규방 내의 비수는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실용의 수평선을 벗어나야 예술의 명에 해당하다고 한다. 살을 가리고 치위를 막음 같은 실용 이상에 가야 의복의 장식미를 말할 수 있고 서간이라도 사무의 범위를 벗어 청신한 감각과 유려한 감정이 있으면 예술의 경계에 든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은 우리는 예술이라고 불러왔다. 예술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체적 형상에 의해서 표현하는 것이며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논리의 설복으로서가 아니라 감정의 전염으로 하는 것이다. 문예의 사회적 영향을 논함에 이 문예 특색의 경로를 무시하는 것은 그 영향 그것에 대한 측정을 목표로 하면서 도리어 작품의 효과를 면밀히 추측하려는 것보다 작자의 의도에 의해서 분류해 치우려는 경향을 띤다. 이것은 일개 예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징소하여 그를 측량하기 어려운 것과 예술의 특성을 이해함이 부족하여 그 형식적 조건을 등한시함에 인유하는 것 같다 (여기 대해서는 <작자의 의도와 작품의 효과>라는 제하에서 다시 상론하려 한다)
비평의 요강… 예술품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준거하여 예술을 평가하려는 비평가는 어떠한 고찰을 하여야 될 것인가, 거기 대한 초안을 조항식으로 기하면,
1. 자기가 받은 인상의 분석 기술 (여기서 비평의 제 일단 인상비평이 성립된다. 모든 비평은 인상비평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립불가능이다.)
2. 자기비판 계급적 입장과 교양 등 (우리가 직접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인상 뿐이요, 자기의 인상은 타인의 인상과 상이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타인의 인상을 추측하기 위한 준비)
3. 사회의 제 노력의 구성관계의 파악
4. 그 작품의 실제 독자의 예상
5. 그 예상 독자의 받을 인상의 추측
6. 작품의 인상이 독자의 심정에 영향하여 그 후의 행동에 생길 변화의 방향과 강약
7. 6의 종합적 결과로 사회가 받을 영향, 편히 일단을 진하여
8. 미래 독자에게 끼칠 영향의 고려
이상의 제 조는 작품의 효과를 측정하려는 노력이거니와 우리는 왜 그러한 효과를 가진 작품이 산출되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9. 작자의 민족과 국토와 환경
10. 사회 제 세력의 구성관계와 작자의 입장
11. 작자의 예술적 재능과 개성적 특질
12. 예술적 수법 - 소재의 취급방법과 표현의 기교 등
이상의 고찰에 의하여 작품의 효과를 측정한 다음 비로소 그는 자기의 사회적 이상에 비추어 그 가치의 유무, 고하를 결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비평의 포회하는 사회적 이상에 따라 그 가치의 판단이 다를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나 어떠한 사회적 이상에 비추어 이를 판단하든지 그 사회적 효과의 사실을 측정하는 경로를 밟지 아니치는 못할 것이다.
부언… 시일의 여유를 얻으면 제대로의 소성이라도 바랄 것이나 본 호에 시평적 논문을 담당하였던 김기진 군이 카프 사건에 관련되어 체절 기일 임박해서 검거된 불행이 필자로 하여금 이 거례 설시가 없는 조잡건조한 초안을 발표하고 이런 부언을 붙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게 하였다.
(문예월간창간호 소재)